창세기 11:1-9 묵상
지금은 포장이사라는 생겨서 이사가 그전보다 많이 수월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정리의 몫은 그대로입니다. 한 번은 이삿짐 전문기업 직원들이 씽크대를 정리하고 갔는데 나중에 그곳을 살펴보니 거실에 있어야 할 것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야 할 것들을 아무 곳이나 급하게 넣어두고 간 것입니다. 겉으로만 정리되고 실제로는 아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모든 짐을 다시 꺼내서 정리하는 동안 화도 나고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사라는 것이 여러 번 해서 익숙해진다해도 정신적 스트레스와 비용적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동방으로 계속 옮겨 다니는 이들에게 시날 평지는 더 이상 이사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들도록 했을 것입니다.변화산에서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외쳤던 베드로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높은 타워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큰 공사이기에 하나의 언어와 말은 소통에 분명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합당한 건축기술이 있었는가는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골리앗 크레인도 없는 시대입니다. 훌륭한 건축자재 특히 H빔도 없는 때입니다. 지금처럼 거대한 높이의 타워를 짓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본문이 말한 건축기술은 진흙을 대신한 역청과 견고히 구운 벽돌이 전부였습니다. 지금의 건축기술로 보면 이들의 호언장담은 교만과 오만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에 대한 우리말 성경의 번역은 "이런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그들이 하고자 꾸미는 일이라면 못할 게 없을 것이다."입니다. 인간의 능력의 위험성을 내포하는 말도 되지만 교만의 극치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벨'은 바벨론의 언어인 아카드어로 '신의 문'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노력과 열심으로 신에 이르려는 것은 언제나 종교적 야망입니다. 바벨탑으로 인해 다시는 대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인간 스스로 못할 것이 없다는 허황된 자신감으로 쌓아 올라가는 탑은 결국 위험한 교만이 되고 말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이를 막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흩으시고 중단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실패와 좌절이 은혜인 때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심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거역한 인간의 위대한 계획은 교만이며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멈추시게 하는 합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시는 동역이 늘 있기를 기도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