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1-11 묵상
롯이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았던 소돔은 윤리나 도덕의 타락 뿐만 아니라 쾌락에 이끌려 성적 타락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5절에 나오는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는 표현은 동성 강간을 의미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으로 방문한 이들을 무례함과 쾌락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은 그들의 타락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줍니다. 보기에 풍요로웠던 소돔은 사실 죄악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기도의 제목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롯은 마침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는 소돔의 핵심층에 끼려고 주요 인사들과 어울리고자 노력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9절처럼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라는 말을 듣습니다. 여전히 나그네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임을 기억하며 세상의 주류에 끼려고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필요하신면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핵심의 자리에 앉히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노력으로 그들 속에 들어가려 믿음을 팔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변두리 인생을 통해서 중심을 바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도덕하고 무례하기 이를 때 없고 막무가내인 그들에게 롯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을 내주려고 합니다. 이는 너무나 어리석은 제안이었습니다. 악행을 또 다른 악행으로 타협하려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세상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의 악행에 눈감고 더한 악행으로 타협하는 것은 결코 선한 결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 이 순간에 필요합니다.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낫습니다. 두 천사가 욕정에 사로잡힌 소돔인들의 눈을 어둡게 하니 문을 찾느라 헤매인 것처럼 거룩함의 문, 순결의 문을 잊고 타락의 세상을 헤매이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