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15-26 묵상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대상이 중요합니다. 장소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일부러 부정까지 할 것은 없지만 그것이 예배의 전부라는 생각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특별히 구별하여 잊지 않기 위해 기념탑처럼 뭔가 기억될만한 것을 세우기를 좋아합니다. 이처럼 장소는 기억을 위한 훌륭한 수단입니다. 반면에 '대상'은 다릅니다.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동시에 미래입니다. 예배는 관계를 통해 드려지는 경배입니다. 따라서 사물이나 다른 피조물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받은 인간만이 영으로, 전 존재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이 땅 위에 다른 피조물은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그 존재를 통해 시편의 표현처럼 놀라우신 하나님의 솜씨를 밝히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과 진리이신 예수님'이라고 볼 수도 있고, '진리의 성령'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우리의 영혼을 깨워 영이신 하나님께 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예배이기에 성령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배는 예수님을 믿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가 드리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일 뿐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구도자였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예배를 갈망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메마름에 울부짖었습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은 '만남'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친히 그리스도로 그녀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신 것입니다. 예배는 장소의 방문이 아닙니다. 대상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장소를 견학하듯이 교회를 방문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을 통해 온전히 삶으로 반응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예배는 삶의 목마름에 생수를 붓는 일이며, 삶의 메마름에 단비를 내리는 일입니다.우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을 우리 안에 채움받게 됩니다.
'목마름'이라는 관점에서 예배를 바라볼 때 예배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집니다. 성령 안에서 주님을 향한 목마름과 갈망이 더 깊어질 때 비로소 생수의 맛을 누리게 됨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탐욕과 소유를 향한 배고프다고 말하지만 성령 안에서 주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주께 나아가는 하루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