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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질 수 있는 관계 본문

말씀묵상

따질 수 있는 관계

헌책7 2024. 10. 30. 18:08

예레미야애가 5:11-22 묵상

'마음에 기쁨이 그치고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고 머리에는 면류관이 떨어졌다'는 표현은 극한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의 출발이 자신들의 범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가를 이 간단한 표현 속에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달콤한 독보다도 더 무섭고 악한 것이 하나님 앞에 짓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노하심과 심판에 대하여 시인은 그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심판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반전이 나옵니다. 20절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라고 따져 묻는 시인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앞에 입이 열 개라도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시인은 감히 하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겁을 상실한 객기나 만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믿고 하는 탄식과 탄원의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인자와 긍휼이 영원한 분이심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았던 선지자는 과감하게 영혼을 향한 열정을 품고 하나님께 따지듯이 호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용기보다 하나님을 아는 그의 풍부한 지식이 더 부러웠습니다. 단순히 지식적이고 신학적인 것을 넘어서 친밀한 교제 속에 알게 된 지식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나를 알아주시기를 바라면서 막상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친밀함 속에서 따질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기를 기도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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