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21-41 묵상
종교와 돈이 만나 결탁을 하게 되면 대부분 좋게 끝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탄이 기뻐하고 세상이 즐거워할 일이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맞닥뜨리지 않겠습니까. 돈에 대한 탐욕과 탐심이 종교로 포장될 때 반드시 그 예봉은 하나님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으로 풍요의 여신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큰 돈 벌이를 하던 직공들이 리더인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직공들은 경건하고 열정적인 종교심으로 포장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돈에 대한 탐욕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바울 일행이 계속해서 선포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아데미를 향한 숭배의 마음 때문이 아니라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 수 없게 될까봐 갖는 두려움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선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의 마음은 우상만큼이나 더럽고 추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여기서 작정하다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결심하다'입니다. 영어 성경 ESV는 이것을 잘 담아서 번역하였습니다. 'Paul resolved in the Spirit'. 그런 바울이었지만 직공들의 소동으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연극장으로 붙들려 갔을 때 바울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달려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통해 말리게 하셨고, 아시아의 관리 중 바울의 친구된 자들을 통해 가지 말라고 통지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간섭은 때때로 바울에게 직접적인 결정에 관여하였지만 때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신비적으로 마음의 결정에 관여하시기도 하지만 너무나 평범한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마음의 울림이 될 때 새겨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대단히 이성적인 서기장(에베소 시의 시장격인 사람으로 보입니다)을 통해 무리를 진정시키고 해산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 되심을 보이십니다. 보이는 우상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삶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으로 보이셨습니다.
하루에도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변함없이 일하심을 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셨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