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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새 계명

헌책7 2026. 4. 7. 17:34

요한복음 13:31-38 묵상

잡히시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은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 사랑에는 많은 노력이 요구됩니다. 먼저 다가가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고, 상처 받았음에도 먼저 용서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늘 손해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왜 나만이라는 속상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함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사는 것입니다. 손해보지 않으려고,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헌신과 섬김 그리고 낮아짐은 사랑의 기초인데 이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라는 새 계명은 성령 안에서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탈선하고, 폭력을 행하는 세상입니다. 사랑이 핑계가 되고 폭력의 정당화가 된 세상입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은 이미 흔해졌습니다. 사랑과 폭력이 공존할 수 없음에도 폭력적 사랑, 이기적인 소유의 사랑이 일반화 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사랑할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 그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받기만 하고 주기를 꺼려하는 마음을 깨는 것 이것이 새 계명의 첫 걸음입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절)이라는 베드로의 말은 화려하고 기백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 번 부인할 뿐이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어디든지 갈 것처럼 고백하며 눈물 흘리며 안수받았지만 힘들고 지칠 때 얼마나 원망이 되던지요. 매일 첫 마음으로 서는 것, 매일 첫 사랑에 서는 것 분명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봅니다. 주님은 첫 마음으로, 오염되지 않은 첫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믿고 의지하는 아침입니다. 그 사랑의 공급함이 없이 오늘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흘려보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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