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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교만에는 위로가 없다 본문

말씀묵상

교만에는 위로가 없다

헌책7 2024. 8. 5. 19:15

예레미야 45:1-46:12 묵상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애굽의 일까지 관여하시고 그들에게 보복하시는 모습은 예외적이거나 보기 드문 경우는 아닙니다. 이미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계시하셨기에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듣기에 좋은 말씀, 들으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라면 전하는 자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바룩처럼 고통에 슬픔을 더하고 탄식으로 피곤하고 평안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선지자만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1차 청자이기에 더욱 힘든 일입니다. 또한 말씀을 전하는 일은 그분의 감정까지 전하게 되기 때문에 때때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바룩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이에 대한 새번역은 "너만은 내가 보호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목숨만은 건져 주겠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위로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신탁은 철저한 보복과 심판입니다.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처녀 딸"(11절)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애굽은 그런 하나님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수의 기병과 동맹군으로 인해 기고만장했습니다. 강의 물이 출렁임 같고 나일 강이 불어남 같은 교만으로 나섰지만 하나님께서 길르앗의 유향으로도 치료될 수 없는 상처만 크게 안겨주었습니다. 교만은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반드시 넘어지고 맙니다.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구할 것은 겸손 뿐입니다. 그 앞에서 많은 수와 큰 규모는 결코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규모의 크기가 우상이 되고 수의 많음이 우쭐거림이 되는 세상에서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야 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삶입니다. 작은 교만도 넘어짐이 될 수 있기에 오늘도 겸손을 구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