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1-21 묵상
'안식'이라는 말처럼 하나님 나라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마 12:8).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일로써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회당에 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남들보다 불편한 몸이었기에 분명 말씀을 집중해서 듣기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참아야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이 섞인 수군거림도 견디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병에서 놓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놓였다'라는 말은 '풀려났다(새번역)', '해방되었다(쉬운)'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안식일에 회복하게 하시는 예수님은 안식일이 해방의 날이요, 풀려나는 날임을 분명히 보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안식이 있는 나라입니다. 속박과 정죄로 가득한 안식이 아니라 쉼과 회복의 날인 것입니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 직접적으로 해를 줄 수 있는가는 신학적 질문입니다. 많은 사탄은 위협과 협박을 통해 인간을 두렵게 하고, 유혹과 미혹이라는 방법을 통해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방법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처럼 사탄은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직장 신우회에서 귀신의 위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그분이 용기를 내어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는데 그곳에서도 귀신의 방해는 계속되어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귀신의 세력들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사람을 상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있음을 가만히 보고 계실 수 없었던 예수님은 귀신을 명하게 나가게 하시고 그의 묶임에서 풀어지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심령이 꼬부라지게 하여 조금도 펴지 못하게 하는 귀신들의 억압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 능력으로 풀어지기를 기도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해야 합니다.이러한 영적 현실을 외면하고 안식일 논쟁에 빠진 종교 꼰대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하루입니다.
겨자씨가 하나님의 나라에 비유에 등장하는 이유는 '풀려나는 날' 곧 안식일과 깊은 관련성이 있습니다. 한 알의 씨는 땅에서 썩어질 때 비로소 줄기가 나고 가지가 납니다. 씨가 그 묶임에서 풀어지지 않으면(썩지 아니하면) 아무 열매가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묶임에서 풀어내어 자유케 하시는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나라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묶고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습니다.
주님이 풀지 못할 인생의 문제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랜 세월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못한 여인처럼 주님께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그 용기와 간절함이 요구됩니다. 제대로 풀지도 못하면서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 혼자 풀어보려다가 더 엉킨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힘들고 지쳤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삶이란 엉킴이지만 주님의 안식은 풀어짐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도 풀어내어 자유롭게 하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으로 인해 위로를 얻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