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기꺼이 나무 하나가 의자가 되어준다 우리에겐 쉼이 필요함을 알기에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기에이는 시간의 낭비가 아니며한가한 소리는 더욱 아니기에 귀를 기울여 삶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으라고나무가 자기 몸을 내어준다

하늘의 구름이하얗고 뽀얀 크림을 만든다깃발 하나가 뭐라고그것을 땅에 꽂기위해수 없이 희생한민초들을 위로하려는 듯이

거대한 모빌(mobile)이오늘도 여전히 높이 매달려 있는 까닭은중심을 잃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군상(群像)들이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다그저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가지를 내고 잎을 낼 뿐이다잘려간 상처를 보듬고새 잎을 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시게 푸르르다

한 줄기의 꽃 봉오리가 손을 펼치더니노을을 배경 삼고전깃줄을 통기타 줄 삼아 구성지게 한 곡 연주하네

쥐었다고 자랑하지 마라인생 어느 순간에펼칠 때가 오나니손에 힘주지 마라인생 어느 모퉁이에힘을 빼야 할 때가 오나니속이 다 보이도록 펼쳐진 꽃이 아름다운 것은있는 것을 다 흘려보내기 때문이리라

늘 쓰레기가 버려지고담배꽁초가 놓여있는 작은 골목에꽃이 피었다그것도 줄지어 나란히..뿌리내린 작은 영토를보랏빛으로 물들였다

봄은땅의 아름다움으로 하늘을 치장한다가을은하늘의 푸르름으로땅을 물들인다

드디어 이름을 아는 꽃들이기억 속에 갇힌 추억으로 스며 들어왔다일상에서 만나는 꽃들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소환하니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아파트 벽면을 배경 삼아벚나무들이 나란히 포즈를 취한다봄은 이렇게 모두의 심장을 뛰게 한다

등불 아래 오손도손 모인 가족들을 바라보는 외등 하나그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주려꽃나무 하나 다가와 활짝 꽃피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