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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늉과 포장으로는 생명의 관계를 누릴 수 없다 본문

말씀묵상

시늉과 포장으로는 생명의 관계를 누릴 수 없다

헌책7 2024. 9. 4. 17:32

열왕기하 2:15-25 묵상

얼핏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하나님의 헤렘(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진멸)이 선포된 여리고와 '하나님의 집'이라는 불리웠던 벧엘의 비교는 천부당만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우선 여리고는 아합 시절 벧엘 사람 '히엘'이 재건축한 곳입니다. 그러나 저주가 그곳에 임하였고 그로인해 물과 토지의 소산이 영향을 받아 열매 맺지 못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랬던 여리고 땅의 물이 바뀐 것은 성읍 사람들의 간청 때문이었습니다. 간청을 들은 엘리사는 소금을 물의 근원에 던지며 여호와께서 물을 고치셨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과연 그 선포대로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곳으로 만든 이후 우상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업신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이후 사명에 충실하고자 머리를 자른 엘리사를 놀리며 조롱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벌하신 것은 그런 이유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린 10대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안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핑계로 실력을 쌓는 일에 게으른 청년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믿는 척만 하는 성도들, 마음으로는 건강을, 자녀를, 세상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겉으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늉을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 하면서 기도함이 없는 삶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생명은 포장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기억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