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기도하다가 죽는 사람은 없다 본문

말씀묵상

기도하다가 죽는 사람은 없다

헌책7 2024. 10. 8. 19:18

열왕기하 20:1-11 묵상

죽음이라는 과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예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고 풀어야 숙제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당장 떠오르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별, 슬픔, 아픔, 잊혀짐, 괴로움, 외로움, 불안, 두려움 등등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밟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약속의 말씀으로 바라볼 때 설렘도 있고 때로는 기쁨과 감사도 있고 기대도 있지만 누구나 순간 멈칫하는 순간은 있습니다. 히스기야도 그러했습니다. 정말 자신의 말처럼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그도 정작 죽음을 반기지는 못했습니다. 그토록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았는데 말입니다.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았을까요? 어쩌면 주님을 위해 더 하지 못한 일들이, 사명이 남아서 그랬을까요? 결과론적이지만 히스기야의 연장된 15년의 삶은 그에게 영적으로 독이 되었습니다. 그의 교만은 그의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만 남겼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히스기야를 포함해서 죽음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순간에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마음으로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하며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시간표를 바꾸셔서 그에게 15년의 생애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이사야는 무화과 반죽으로 그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고 단 3일 후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히스기야는 응답의 징표를 구합니다.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3일만 기다리면 말씀대로 되는지 알 수 있는데 그는 기다림보다는 지금 당장의 징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히스기야를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부족을 꾸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히스기야의 요구대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가 뒤로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에 놀라고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에 감탄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가 없어서 죽고 기도하지 않아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라도 하지 않는 기도보다 낫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는 중단해서도 안되고 중단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