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17-3:12 묵상
포로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뻔뻔하고 당돌해졌습니다. 비단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대가 꺾이고 바라던 것이 무너질 때 사람의 마음은 뒤돌아서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따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이 그러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도 그러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도할 때의 마음 다르고 기도 후에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응답이 거절되었다 싶으면 마음이 확연히 달라져서 비난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죄성을 가진 인간의 간사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불을 내리십니다. 하나는 심판의 불이요 하나는 연단의 불입니다.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불, 표백하는 잿물처럼 임하셔서 그들의 예배를 깨끗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배의 회복을 통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누구를 기쁘게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혹 예배조차도 내 중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는 중심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둑질의 경우를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책망에도 그들은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했습니까?" 반문합니다. 드리지 않는 것, 아까워하며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이 도둑질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항변합니다. "당장 먹을 양식도 부족한데 어떻게 십일조를 드립니까?"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드리지 않아서 어려워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흭가 이렇게까지 나를 속이며 어디까지 참는가 시험해야 하겠느냐? 탄식하십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는 세상, 돈이 신이 되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야말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돈, 마음, 시간 그리고 삶의 십일조 드려보세요...세상에서는 자유를, 하나님에게서는 부어주심을, 성령 안에서는 충만함을 경험할 것입니다.